일상서 지폐 '격리'되며 현금결제 뚝…빠르게 C→D로 간다

입력 2020-04-09 17:19   수정 2020-10-16 15:55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가인 토트넘코트로드 인근 한 식료품 매장. 문 앞엔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근처 슈퍼마켓 중에선 카드를 이용하는 무인 계산대만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영국에선 3파운드(약 4500원) 미만은 카드 대신 현금으로 계산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 같은 결제 문화도 바꿔놓고 있다. 영국의 가게들이 동전과 지폐를 안 받겠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금 결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전 세계에서 감소하는 추세였다. 코로나19는 이를 더 촉발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현금 사용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폐와 더불어 이자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잇따라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있어서다.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운용 중인 일부 국가는 마이너스 폭을 더 확대할 예정이다.


사라지는 현금 결제

현금 사용이 급감하는 현상은 유럽에서 두드러진다. 유럽에선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현금선호 현상이 강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평균 현금결제 비중은 53.8%였다. 미국(26.0%)과 한국(19.8%)을 크게 웃돌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현금결제 비중은 각각 87.0%, 86.0%에 달했다.

코로나19는 이런 현상을 순식간에 바꿨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ECB는 지폐와 동전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수 있으니 카드와 모바일결제를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인도, 러시아, 베트남 중앙은행도 현금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에선 화폐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홍콩대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지폐에서 나흘가량 생존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매킨지앤드코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난달 이탈리아의 신용·체크카드 등 비(非)현금결제는 전달 대비 80% 증가했다. 그만큼 현금 사용이 줄었다는 뜻이다. 영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운영기관인 링크는 코로나19 이후 영국의 현금 사용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각국의 봉쇄 조치로 온라인 구매가 늘어난 데다 지폐와 동전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현금결제가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신용카드도 비접촉 선호

카드 중에서도 결제 시 서명이 필요한 신용카드 대신 모바일결제 및 ‘콘택트리스 카드’로 불리는 비접촉카드 비중이 급속히 늘고 있다. 비접촉카드를 활용하면 계산대 직원을 거치지 않고 무인 계산대에서 결제할 수 있다. 이에 맞춰 마스터카드는 건당 25~30유로였던 비접촉결제 한도를 45~50유로로 인상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현금결제 수요가 제자리를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전염병에 따른 트라우마는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선 소비자의 70%가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 결제와 카드 등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FT는 “현금없는 시대를 코로나19가 빠르게 앞당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각국 정부도 현금없는 사회를 반기고 있다. 현금결제가 줄어들수록 거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세 및 뇌물을 없애 지하경제가 양성화되면 정부 세입도 늘어난다. 현금결제 비중이 높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0%에 육박한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로금리로 이자도 사라져

코로나 시대에 없어지는 것은 현금만이 아니다. 각국이 금리를 낮추며 이자도 사라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제로(0)로 기준금리를 낮췄다. 유로존과 일본, 스위스는 몇 년 전부터 마이너스금리 를 적용하고 있다. 현금없는 사회는 제로금리 사회와 결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인 《화폐의 종말》에서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인 금리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지폐가 폐지돼야 한다”고 썼다. 초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대거 풀린 현금이 ‘집 안 금고’가 아니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입되려면 현금없는 사회가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현금없는 사회가 제로금리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2009년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스웨덴이 일찌감치 현금없는 사회를 준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로금리 시대에 접어들면 과거처럼 위험부담 없이 채권과 예금에 투자해 이자를 받는 방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제로금리 정책은 은퇴자 등 이자생활자의 투자전략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라며 “기대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 투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에 낯선 취약계층은 현금없는 사회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중은행이 지점과 ATM을 폐쇄하면서 현금 접근성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2015년 1월 영국 전역에 9803개였던 은행 지점이 지난해 8월 6549개로 3254곳 감소했다. 이 기간에 은행들은 3303곳의 지점을 폐쇄했고, 49곳의 지점을 늘리는 데 그쳤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각국 시중은행은 일부 지점을 추가 폐쇄하고 ATM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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